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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2007
참여작가 김태인
전시기간 2007. 4. 14 (토) ~ 4. 30(월)
전시정보 전시오픈:2007. 4. 14 (토) 오후 6시 / 장르:조각
 
"Are You Ready?" 김태인 개인전 (Kim, Tae-In solo exhibition)
 
 
어떻게 철은 바다와 만날 수 없었는가

  사물의 용도라는 게 있다. 어떤 상황이나 맥락 아래에서 사물의 사용처라는 게 있는 법이다. 또 사물의 용도는 원리상 그 사물이 거처하는 장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물의 사용가치 따위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으므로 사물의 사용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나 그것이 본래적으로 있어야 할 ‘장소’는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사물의 가치는 전시가치나 그 효과에 의해 결정되는 형편이니 그 사물이 어디에 있든 외양이 번듯하고 그럴듯하다면, 삶의 구체성을 담보하는 직접적인 ‘장소’나 사용처는 깡그리 무시되어도 무방하다. 자본주의에서 상품이 존재하는 제일원리인 전시가치가 가치를 결정하는 중추를 담당하는 이상 사용가치를 아무리 주장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물론 이 진술은 이 글의 말미에서 다시 재고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한 사물이 본래적 성질을 유지하기 위해 그 사물의 조건이 보장되어야만 존재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물의 속성과 위배되는 속성을 지닌 상이한 존재와 만나는 것은 될 수 있는 한 피해야만 한다. 가령, 철과 바닷물은 원리상 결합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대륙적이고 고착적인 이미지와 해양적이고 유동적인 이미지를 함유하는 두 존재는 서로 대립적으로 배제하고 있어서 이 양자가 접속할 때 어떤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파괴적으로 구성하게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즉, 해양적이고 유동적인 산물인 물고기 화석을 제외하고는 이 양자가 적절하게 결합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물고기 화석은 물고기로써 가치를 상실한 채 딱딱한 ‘돌’로 굳어버려야만 하며 그 때 심해를 부드럽게 유영하는 능력은 박탈당하고 만다.

   김태인의 작업은 이처럼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 혹은 사물들이 결합되는 데에 관심을 둔 작가이다. 대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의 경계 위에서 긴장감 넘치는 줄타기를 한다는 말이다. 철조 작업을 통해 제시된 그의 어류 연작은 철의 본래적 이미지를 위배하고 부드러운 생물인 어류를 표현한다. 특히 이번 <문어>작업은 ‘철’과 ‘바다’(혹은 어류)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철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통째로 문어를 구성하거나 매끄럽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는 그렇게 하는 대신 이음새를 과도하게 노출하거나 불규칙한 반사광이 생기도록 구성했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철의 고정적 이미지와 바다의 유동적 이미지 두 이미지 가운데 어느 한 이미지만을 선택하는 것을 피하고 두 세계를 만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전혀 상이한 두 세계가 만날 때마다 어느 한 세계의 절멸을 추동해왔던 사회시스템에서라면 이 둘의 만남에서 죽음을 떠올리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두 세계가 공존하도록 유도한다.
그 때 ‘철’과 ‘문어’는 기묘한 공생관계에 속하면서 각각의 속성들을 말 그대로 나눈다. 이러한 작업 전략은 다른 한편으로 미술의 양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자본주의 상품형식이 전시됨으로써 가치를 부여받는 것과 전시공간에 전시되는 작품과 어떻게 분별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사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밝힐 수 있는데, 김태인의 작업이 두 세계가 뒤섞임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달리 말해 불가능한 존재를 구성해 놓은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어느 세계에도 완전히 귀속되기 어려운 존재는 자본의 가치평가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다. 사용처도 없는 괴물과 같은 ‘문어’는 그야말로 자본의 틈새에서 여유롭게 현실의 강력한 자장을 집어삼키지 않겠는가. 아니, 그것은 문어도 아니고 철조라고도 말할 수 없는 형상이어서 현실이 철조를 통해서 그것을 장악하든 ‘문어’로 이해하든 ‘그것’을 현실 내에 보존하기가 어렵다. 전시장 전체를 거의 가득 들어차 있는 그것을 어떻게 포획하여 숙회로 먹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소화되지 않고 살아남아 빨판으로 자본에 부착한 채 자본을 피 말리는, 그렇다고 퇴치될 수도 없는 날 것이라고만 부를 수 있다.

   요컨대, 김태인의 작업은 저 싱싱한 것 같기도 하고 죽어버린 것 같기도 한, 정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긴 다리와 흡판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 존재를 통해 우리 사회가 공동선을 회복해야 한다면 넘나들 수 없는 두 세계가 마치 철과 바다가 목숨을 건 도약을 감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숨을 버리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 그 때에서야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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