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Recent News Exhibitions Our Activities Artist Free Board
 
Exhibition
Recent exhibition
Upcoming exhibition
Past exhibition
Past Exhibition
분 류 2008
참여작가 김은주(Kim euin-ju), 박재현(Park jae-hyeon), 심점환(Shim jeom-hwan)
전시기간 2008. 3. 8(토) ~ 4.13(일)
전시정보 전시오픈_ 2008. 3. 8(토) 오후 6시
 
바람난 40대 ("Love Affairs of Forty Something Years Old People" 3/8- 4/13, 2008 )
  
 
바람난40대

● 불혹(不惑)!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체험한 것으로,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보면, 미혹(迷惑)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고 있다.화가의 길로 접어들어 불혹을 넘어 지천명(知天命)을 다가 갈 때는 세간의 무게와 작가로써의 또 다른 나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고도 항시 전투태세이다. 비단 화가의 삶만 그러겠냐, 마는 우리네 삶도 다를 바 없겠지만 말이다. 허나 처음 이길로 들어선 화가 중 20년 이상 그 시작의 창대함을 잊지 아니하고 오로지 작가로써의 올곧음을 실천하고 한길에 매진하는 작가들은 주변에서 쉬이 찾아볼 수가 없다. 어쩌면 볼 수 없는 곳에서 실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세 작가 김은주, 박재현, 심점환은 이번 ‘바람난 40대’에 초대되어온 특별한 주인공으로 그들의 화폭 속에 빠져 바람이 나길 바라는 기획자의 숨은 의도를 읽어주길 바란다. ● 요컨대, 미술시장의 광풍 앞에 미술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숭고한 의미와 본질은 현대미술의 조류 속에 어디로 표류하는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잘 팔리는 작가가 좋은 작가로 그러하지 아니한 작가는 그저 가치 없는 작가로 치부되는 그런 현상으로 어느새 시장논리 앞에 미술이 매김 당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시점에서 소위 잘나가는 젊은 작가의 작업에 칼을 세운 비평이나 담론의 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사례를 좀처럼 볼 수가 없다. 비평의 부제인 셈이다. ● 이번 오픈스페이스 배 주제 전 ‘바람난40대’는 이곳 부산에서 거점을 두고 작업하는 세 작가 김은주, 박재현, 심점환과 부산이 아닌 서울, 대전에서 활동하는 비평가 김윤경, 이수정,김민기와 1년 전부터 오픈스페이스 배가 만남의 주선을 통해 데이트를 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자리를 빌어 세 작가와 세 비평가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언어가 척박한 지역 어느 큐레이터가  뒤풀이 자리에서 한 얘기가 기억난다. “한 작가를 만나 작업을 같이하게 되는 과정은 연애와도 같은 기분이다. 처음 그가 궁금하여 설레임으로 밤을 지세고, 알아갈수록 사랑하게 되고, 알듯하면 이별을 해야 하는...” 필자는 그 사랑이 이번 전시를 통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이 세 작가가 바람이 나서 훨훨 날아다니기를, 그 바람이 이곳 오픈스페이스 배의 또 다른 작가들 까지도 온통 바람난 작품으로 외도(?)하기를.미술 판에 또 하나의 소중한 소통의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  서상호

 
 
심점환(Sim jeom-hwan)_Catharsis,Oil on canvas,116.7x91.0


전시오픈_ 2008. 3. 8(토) 오후 6시        
전시기간_ 2008. 3. 8(토) ~ 4.13(일)
전시장소_ 오픈스페이스 배
참여작가_ 김은주(Kim euin-ju), 박재현(Park jae-hyeon), 심점환(Shim jeom-hwan)
장      르_ 영상, 회화
참여비평가_ 김민기, 김윤경, 이수정
작가와의 대화_ 오후6시30분 ~ 8시

*행사 당일 셔틀 운행합니다. 참가자 및 셔틀 이용하실분은 사전 메일주세요.
*장소 : 기장시장입구(기장교회앞) 경유 일광역앞 (시내버스  180,188,)
           5시 30분 부터 20분간격으로  6시 30분 까지 운행



먼 곳을 바라보며 길에 서있는 유랑자 현실과 이상의 저편에 존재하는 회화의 본질을 찾아...
● 한국현대미술은 진정한 미의 추구에서 벗어나 시장의 자본논리에 의해 길들여져 가고 있는 듯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순수한 창작, 열정 보다는 자본논리에 의해 상업적인 이미지가 범람하는 미술시장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과연 미술가들이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 내심 걱정이 된다. 동시대미술에 있어서 외적인 상업적인 사회구조속의 미술과 내적인 예술개념 속에 존재하는 상호간의 담론 속에서 창작의 자유를 버리고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을 무작정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동시대적인 대중문화를 읽어내고 경험하는 과정, 즉 사회와 예술이라는 끊임없는 이원론적 구도 속에서 창작이라는 하나의 담론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상호 소통방식을 시도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의 혼재된 미의식 속에서 작가로서 걸어가야 할 길이 과연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물론 작품과 시장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작가로서 부와 명예를 얻는 극소수의 작가들은 행운아 일 것이다. 하지만 그 주류에서 조금이라도 빗겨나 있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혼신을 다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천대를 받거나 무관심 속에서 처절하게 마지막 승부를 매번마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 아니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미술시장의 호황은 작가의 고즈넉한 사고로 탄생한 작품을 진실성 있게 바라보도록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상품화된 미술의 잣대로 미술을 판단하고 현대미술을 패러다임인양 앞질러 나가고 있다. 이런 잣대들에 의해 작가들은 공장처럼 패턴화된 이미지의 작품을 생산해 내고 있는 결과를 낳았으며, 미술시장이 요구하고 있는 기준에 의해 현대미술담론의 존재의식을 상실한 채 한 쪽으로 너무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심점환 (Shim jeom-hwan)_Catharsis,Oil on canvas,116.7x91.0

● 이런 한국의 미술구조 속에서 심전환은 회화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가 중에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리얼리티(에로티시즘)작품 3점을 선보이는데 이 노골적인 3점을 놓고 일반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다 보면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기에는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에로티시즘을 그 자체로 읽어낼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그동안 끝없이 천착해 온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과감한 소재 선택에서 오는 진실된 시선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가 없다. 하지만 필자는 이 3점을 놓고 단순한 에로티시즘으로 간과하기 보다는 후자를 선택하고 말을 하고 싶다. 심점환은 처음부터 이런 노골적인 작품을 제작한 것은 아니다. 초기의 작품은 일상생활의 각기 다른 풍경들을 미묘한 시각으로 조합하며 고정관념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비껴가기를 시도하며 몽환적인 세계를 표현해 왔었다. 또한 최근에는 내장을 드러낸 보신용 개를 화면 가득 메우면서 마치 붉은 꽃이 만개한 듯한 화면을 연출하는 작품을 제작해 왔으며 시장의 한 구석에 버려져 있는 생선의 머리, 뼈, 내장을 같은 방식으로 화면에 가득 채우는 작품을 제작해 왔다. 이 작품들은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혹은 버려진 대상들을 재현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대상의 선택들은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미술의 세태에 대한 반어적인 비유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개와 생선은 그 자체로서 생명의 근원적인 삶을 부여 받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망에 의해 생명을 잃고 시장의 한구석에서 내장을 드러낸 채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심점환은 이제 더 이상 그 의미를 상실한 개와 생선을 화면에 옮기면서 자신이 직시하고 느끼는 현대미술의 잃어버린 단면을 표현하고 있다.

 
심점환 (Shim jeom-hwan)_Scene,Oil on canvas,116.7x91.0

● 그리고 앞으로 이번에 전시할 노골적인 3점은 감추어져 있는 성적인 이미지와 드러내는 성적인 이미지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불협화음을 한 시점으로 은유적인 내용을 담아내며 풀어내고 있다. 이와 같은 과감한 소재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이 작품에서심점환의 작품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회화의 본질을 찾기 위해 일반적인 시각에서 조금 빗겨나 있다. 회화로서 갖출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지만 의미 자체로 바라보면 다른 회화들과 사뭇 다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이 노골적인 3점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낯 뜨거운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육체적인 욕망으로 보기 보다는 사회적인 이면을 작가만의 시각으로 직시하고자 했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동안 작가를 만나면서 40대 지역작가로서 거센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조용히 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았었다. 지역이라는 한계를 넘어 작가가 바랬던 현실과 이상의 저편에 존재하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답을 찾기를 바라며 오늘도 그 것을 찾아 떠나는 길에 동행하고자 한다. ■  김민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김은주 (Kim euin-ju)_No title,Pencil on paper,1960x260


세상으로 향하는 풍경_김은주, 그의 작업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0월 갤러리 벨벳에서였다. 무수한 연필선으로 완성해낸 그의 작업들은 부산 억양과 건강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던 그의 첫인상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밀하게 드러나는 연필의 궤적들은 화면을 마주했던 그의 오랜 시간들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검은 연필만으로 구현해낸 그의 세계는 그 고집스러움으로 인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199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해온 김은주의 작업은 그가 부산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작업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 그의 작업이 우리가 쉽게 읽어낼 수 있는 형태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부산 형상미술의 전통 속에서 우선적으로 바라보도록 우리의 시선을 유도한다. 작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그의 작업은 부산의 형상미술 전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배태되어 왔다. 초기부터 고수해온 김은주의 연필 드로잉 작업은 20세기 초 작업을 통해 독일의 사회적 조건들을 고발해온 케테 콜비츠(Kathe Schmidt Kollwitz, 1867-1945)의 단순하고 투박한 선묘, 혹은—보다 최근의 사례를 들자면—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와 인종격리정책(apartheid)에 대해 발언해온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1955- )의 우울하고 시적인 검은 드로잉들을 연상시킨다.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 자신과 더불어 호흡하는 시간과 역사에 대해 거칠고 직설적으로 발언했던 이들 작가들처럼, 김은주의 작가적 촉수도—1980년대를 살아온 작가들처럼—결코 사회로부터, 시대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러나 강인한 검은 필획으로 드러나는 외형상의 유사성만큼, 이들이 과연 사회를 향하는, 시대를 향하는 태도에 있어 진정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참여미술의 선각자로 불리는 콜비츠의 경우, 그의 미술은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 받고 있으며, 켄트리지 역시 내러티브가 강하게 드러나는 검은 드로잉과 드로잉 애니메이션을 통해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부산의 형상미술에서 드러나는 주요한 주제로 ‘도시, 일상, 내면’을 지적한 미술평론가 김만석의 언급처럼, 부산의 형상미술, 그리고 그 전통 속에 위치한 김은주의 작업은 사회를 향한, 외부를 향한 거침없는 외침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내부를 향하는, 일상에 잠식된 개인의 내적인 성찰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김은주가 화면에서 보여주었던 형상은 서사(敍事)를 회복하기 위함, 다시 말해,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성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연필의 필선이 화면을 채워나가는 과정, 즉 그린다는 행위 자체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커다란 화면에 극단적으로 과장되거나 단순화되어 함축적으로 표현된 그의 드로잉은 구체적인 형태, 구체적인 이야기로 읽히기보다는 추상화에 가까운, 어떤 단일한 힘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김은주 (Kim euin-ju)_No title,Pencil on paper,1960x260

“나는 늘 존재하고 싶다. 많은 부딪침 속에서 느끼는 힘겨움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 이렇듯, 김은주의 작업은 존재론적인 고민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꿈을 꾸기에는 너무도 비좁은 곳이었다는 김은주의 언급은 폐쇄적인 화면으로 고스란히 시각화된다. 즉, 이 시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은 바로 화면 가득히 그린, 아니 종이의 사각 틀에 갇혀 있는 듯 보이는 검은 인간 군상이다. 물리적으로 한정된, 주어진 공간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된 한계에 부딪쳐 몸부림치는 형상들은 그렇게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형상들은 결코 좌절하거나 주저앉아버리지 않는다. 웅크린 모습은 오히려 다시 일어나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신체적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거대한 스케일의 화면을 가득 채워나가는 힘겨운 손의 노동은 이후의 ‘바다’ 드로잉에서도 집요하게 드러난다.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그에게 갑작스레 다가온 소재는 ‘물’이었고, 이것은 고향의 ‘바다’로 형상화 되었다. 그러나, 이 ‘바다’ 역시, 그의 개인사를 서술하기 위한, 혹은 존재 상황을 투사하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풍경이라기 보다는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작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충족감의 산물로서 드러나는 또 다른 형태의 추상화였다. 하얀 종이의 여백을 연필로 남김없이 검게 칠해가는 수행과도 같은 그의 작업은 어찌 보면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의미에서의 작업이 아닌, 작가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해가는 순간 순간의 집적물(集積物)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업은 화면이 구현해내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더하여, 화면 자체를 마주하는 작가의 실존적 태도의 성실한 아름다움까지도 담아내게 되며, 이 화면 앞에서 관객은 작가가 풀어내는 감정의 충만함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김은주의 작업은 그 고유의 폐쇄적인 측면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지나친 관념화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의 ‘꽃’ 작업은 김은주라는 작가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맥락을 마련해 준 계기가 되어 매우 흥미롭게 보인다. 김은주의 작업에서 ‘꽃’이 등장한 것은 2004년 가을부터이다. 이전의 ‘인체’나 ‘바다’ 드로잉과는 달리, ‘꽃’은 한결 여유로운 여백 위에 전통적인 정물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점차 여백이 더욱 강조되면서, 꽃을 그린 화면이 이제는 풍경을 암시하기 시작한다. ‘인체’와 ‘바다’를 그리던 시기의 폐쇄적인 공간감은 ‘꽃’이라는 정물이 도입되면서부터 여유를 찾아가고, 꽃잎이 흩날리는 하얀 종이의 여백은 세상을 향해 열려가는 작가의 의식을 드러낸다.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고수해온 검은 연필 드로잉은 김은주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우직하리만큼이나 외골수적인 작업 방식이 관객들에게는 작가와 작업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더욱 좁게 만든 요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실존적인 고민들이 작가 개개인을 짓눌렀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오면서 이제는 그의 작업에서도 여유로운 호흡이 감지되어 반가운 마음이 든다.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꽃잎처럼 그의 작업이 관객들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 그의 고민과 성찰의 시간들을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 김윤경, 몽인아트센터 디렉터

 
박재현 (Park jae-hyeon)_빛의 이야기,6m이내설치

● ‘등화관제훈련’이라는 게 있었다. 평소에는 가로등, 아파트 집집마다 환히 빛나는 불빛, 거리의 현란한 네온사인들로 번쩍거리던 도시가 온통 까만 어둠 속에 묻히는 순간. 화장실에 가는 잠깐 동안 무서워서 불을 잠깐 밝히면 그 작아 보이는 불빛은 집밖까지 새어나가고, 밖에서 “102호 얼른 불 꺼요!”라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불을 껐다. 아무리 작고 작은 빛이라도 불을 끄기 전까지는 숨길 수가 없으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녀석이 아주 멀리 멀리 뻗어 나가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빛이란, 그렇게 다루기 어려운 존재다. 또한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을 무너뜨릴 수 있는, 꽤 매력적이고 힘이 센 존재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도, 은유적으로도 빛은 언제나 긍정적인 것들-신의 영광, 지혜, 사랑, 온기 등-과 이어져 있다. 반대로 어둠은 공포와 두려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상징해왔고, <전설의 고향>을 비롯한 공포 영화는 언제나 칠흑 같은 밤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 작가 박재현의 표현을 옮기면 우리는 "어둠을 몰아낸" 시대를 살고 있다. 어둠보다 빛, 특히 인공광에 더 익숙한데, 편의점과 대형할인마트, 햄버거 가게는 24시간 환히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하고, 나이트클럽은 온갖 값비싼 총천연색 조명을 쏘아댄다.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많은 빛을 누리는 세대이다. 핸드폰의 액정에서부터, 텔레비전, 컴퓨터 모니터처럼 우리의 일상 곳곳에 빛이 있으며, 현대 미술가들에게도 '빛'은 '소리'와 함께 영상과 설치에 자주 사용되고 있는 요소이다. 박재현이 작업의 중요한 요소이자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은 바로 '빛'이다. 1990년대에 이미 레이저를 사용하기 시작했고(「새로운 에너지의 예감」, 1996/1998), 2000년대 들어서는 LED를 사용하기 시작한 작가는(「빛의 이야기」, 2002) 2005년에 쓴 <작가의 정신, 상황, 미래>라는 글에서 왜 자신이 '빛'을 선택하고 주목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박재현 (Park jae-hyeon)_빛의 이야기,6m이내설치

"지금 나는 이 빛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21세기는 빛이 생명을 가지게 되고 사람과 같이 놀며 말하고 사랑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엄청난 자본과 비인간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앞으로 의사전달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고 정보와 결합하여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략)… 나의 작업은 이 거대한 힘을 가진 빛에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리고 빛이 인간과 따뜻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에너지가 자제력을 가지고 인간과 대화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확실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재미있는,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의 '도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2006년 김해 가야문화축전 고분박물관 야외에 설치되었던 에서는 작가는, 고분을 둘러싼 풀 속에 주위가 환한 낮에는 하얀 기념비들처럼 보이는 기둥들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서 주변에 어둠이 깔리면 기둥 속에서 불빛이 깜박거린다. 사실 그 불빛은 기둥 속에 계속 있던 것이다. 다만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뿐이다. 작품의 불빛은 함부로 주변 환경을 압도하거나, 제압하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명멸하는 불빛들은 주위를 둘러싼 어둠을 확 몰아내고 환하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은근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반대로 날이 밝아올 때면 환해 보이던 기둥들은 조금씩 그 빛을 잃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 작품이 존재하는 형태, 주위와 관계 맺는 방식은 자연과 닮아 있다.
새벽에 날이 밝아오는 순간을 떠올려 보라. 반대로 저녁에 사위에 어둠이 깔리는 순간을 기억해보라. 봄에서 여름으로, 또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뀔 때........ 또 아이가 어른이 되고 또 노인이 될 때...... 자연에서 그런 변화의 순간들은 언제나, 언제 바뀌었는지도 모르게 스르륵 찾아온다. 천천히 조금씩 주위를 물들여가며 변화가 시작되고,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그 흐름의 방향을 되돌릴 수는 없다. 「Toward Unknown Energy」에서 '빛'은 그렇게 서서히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형광등처럼 단번에 모든 어둠을 물리치고, 주위를 확 바꿔버릴 만큼 밝아지려 하지 않는, 어둠과 함께 어울릴 줄 아는 빛이다. ● 반면 도시에서 우리가 만나는 '자본과 비인간적인 면이 존재하는' 빛은, 주위가 어떻게 되든 밝고 현란하게, 사람의 시선을 확 잡아끌려고 애쓴다. 그리고 우리에게 달콤하게 속삭인다. “이 가게 안은 따뜻해요. 이곳에 와서 쉬어요. 우리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불빛이 전하는 메시지는 사실 “우리 가게 안은 물건을 구매할 당신에게는 따뜻해요. 이곳에 와서 돈을 써요. 우리는 언제나 당신이 돈을 쓸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의미와 같다. 고유가 시대의 비싼 전기료를 감수해도, 저렴한 임금에도 일해 줄 주부와 청소년을 고용하면 맥도날드와 홈플러스의 과하게 밝은 불빛은 한밤에도 환하게 빛날 수 있다.(누구를 위해서, 왜, 어둠을 몰아냈을까. 어둠이 사라져서, 옛 사람들보다 더 많은 빛을 만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까.) ● 작가가 사용한 '빛'은 그 '비인간적인 자본'이 사용하는 재료와 같은 것이다. 신호등과 전광판, 자동차 키 등 생활 곳곳에서 쓰이는 LED 전구로 2000년대 초반부터 내구성이 좋고, 작업하기에 용이한 이점 때문에 사용해오고 있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환경과 인간에게 격한 자극을 주는 방식과 달리, 조용히 다가가도록 사용했다. 테크놀로지를 따뜻하게 만들고,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은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 믿기 때문이다.

 
박재현 (Park jae-hyeon)_빛의 이야기,6m이내설치


●"빛"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작가는 요즘 "빛으로 인공적인 풍경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작가는,거울로 만든 방에서 반사되는 빛들의 연속이 만든 '빛으로 확장된 공간', 일상적이지 않은,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에 대한 체험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한밤에도 대낮같이 환한 불빛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공간은 '빛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어둠의 공간'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대낮같은 한밤의 불빛이 우리가 착실한 자본주의의 일꾼으로 밤에도 일할 수 있도록 과한 친절을 베풀어준다면, 반대로 조금은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질 지도 모르는 어둠과 그 속에서 만난 빛으로 우리는 2008년 3월 부산시 기장군이 아닌, 달력에 나오지 않는 어느 날, 지도에 없는 어느 곳에서 비일상적인 일들을(그게 무엇이든) 해 볼 여지를 발견할 수 있다. 특별히 비일상적인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분명 최소한 그 속에서 일상적인 일을 할 수는 없게 될 테니까. 아무런 비밀도 허용하지 않는 밝은 공간,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숨을 곳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환한 공간에서 벗어나 어둠을 만날 때, 우리는 오히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너무 많이 일하고, 주위와 너무 많이 얽혀 있는 우리에게 어두운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만나는 '빛'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옆 사람의 표정이 훤히 보이는 불빛이 잦아들었을 때, 온전히 나를 위한 공간과 시간을 얻는 행운을 누리게 될 지도 모른다. 그 공간은 내가 다른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점유한 공간이 아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반사된 이미지와 빛이 어우러져 매순간 새롭게 구성되며, 나의 움직임은 내가 공간과 나누는 대화와 같다. 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 이수정(오픈스페이스배 객원 큐레이터)

(48927)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길 43 | TEL 051-724-5201 | mail:openspacebae@hanmail.net
Alternative space_ Openspace Bae, 43 Donggwang-gil, Jung-gu, Busan, Korea | Tel. +82-51-724-5201
(c)2006 SPACEBAE. ALL RIGHTS RESERVED.
산복도로1번지프로젝트 | 안雁창窓고庫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