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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김이주 김정인 김정훈 신윤지 조현수 한솔 황원해
전시기간 2019.12.20(fri) - 2020.01.18(sat)
전시정보 2019 artist incubating 전시
 
2019 artist incubating program <아래서 빛나고 있던 것들>

2019 Artist Incubating Program 전시
  • 전 시 명  : 아래서 빛나고 있던 것들
  • 참여작가 : 김이주, 김정인, 김정훈, 신윤지, 조현수, 한솔, 황원해
  • 전시기간 : 2019.12.20(fri) - 2020.01.18(sat) / 매주 일요일, 공휴일, 12.31~1.3 휴관)
  • 오 프 닝  : 2019.12.20(fri) pm 6:00 
  • 전시장소 : 오픈스페이스 배




아래서 빛나고 있던 것들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2019년 인큐베이팅 작가들은 예년과 다르게 두 개의 공간을 경험하고, 두 번의 전시를 선보인다. 한 번은 해운대 달맞이의 지하 공간, 그리고 이번은 중앙동의 지상 공간이다. 시공간상 서로 떨어진 두 공간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원형계단이다. 해운대 전시장의 상징이었던 원형계단을 중앙동 공간에 맞춰 설치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전의 계단이 우선 지하로 내려가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의 계단은 먼저 위로 오르기 위한 상승의 수단이다.

 

상승의 이미지는 위치의 변화를 뜻하기도 하지만, 가능성과 의지 또한 담고 있다. 전시 공간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변화와 함께, 올해를 함께 보낸 인큐베이팅 작가들의 상승의 가능성과 의지를 표출하고자 한 전시이다. 참여 작가들은 연간 프로그램을 통해 다각도의 토론과 수업을 거쳤고, 작가로서 겸비해야 할 현실 감각들을 공유했다. 그 가운데 새로운 에너지, 그리고 경쟁과 협업을 통해 서로 힘이 될 동료 및 선배를 만들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최소의 대가에도 진심으로 참여해주신 강사들 그리고 먼 길 지각없이 참여해준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김이주

 

난 대상의 명확한 형태가 흐려지는 어두움 밤의 풍경을 재구성하여, 이성적 판단이 줄어든 시간대에 마주할 수 있는 감정적인 관계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모든 것이 어두워지기에 대상을 각자 구분하면서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주었다. 낮에는 해야만 했던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놓고, 그저 어두움에 휩쓸려갈 뿐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일부가 되었을 때 안정감을 느꼈다. 이성적인 판단과 구분이 시작이 아닌, 휩쓸려오는 감정만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관계 속에서 말이다.

 


김이주 () 김이주_꽃무리_oil on canvas_89.4x145.5cm_2019 () 김이주x한솔_아래 들숲_oil on canvas, 프로젝션_145.5x89.4cm_2019



김정인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저항성에 관한 탐구이자 회화적 표현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내면을 보여주는 붓질과 배회로써 만들어지는 작업은 단순한 재현과 방황이 아닌 장기간의 체험과 응시 그리고 대상에 투영해보는 객관적 시도로 구성된다. 화면 위의 대상들은 나의 서식지 주변을 오가며 마주하는 것들이 주를 이룬다. 나에게 소재들은 나와 다를 것 없이 소멸을 기다리는 유한하고 낡은 존재들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소재를 화면 위로 불러들이게 하며, 동일시하는 시선을 유발한다. 그 결과 나는 모든 대상 간에 층위를 나누지 않고 동등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갖게 된다.

 

나는 과거에 군대와 학교, 또래집단에서의 이동에서 겪은 혼란과 내부적 변동을 통해 야기된 소외와 부적응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미화의 성향을 띠는 집단 속 변혁과 연관 짓는다. 내가 느끼는 미화적인 변화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변동이라기보다 대외적 이미지만을 신경 쓰는 겉치장으로 느껴졌으며, 그것을 수용해야만 하는 분위기는 강요와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강요는 날 덮치는 급류로 인식되어진다. 그리고 빠른 수용을 하지 못하는 더딘 습성으로 인한 집단과의 거리를 두어 외부에서 내부를 바라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방향 없이 빠르게만 진행되는 패러다임의 변동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며, 그것으로 초래될 수 있는 몰개성과 분별력 상실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주목은 변화라는 것을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며 냉소적인 시각과 감정적 붓질이라는 나름의 진단을 제시하게끔 한다.

 

나는 오랜 기간 인간과 낡은 대상이라는 각기 다른 성질에 주목하였고 그것들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변화에 대한 긴장감을 감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낡은 인공물과 그것을 지지대 삼아 버티는 자연물이 동시에 느끼는 소멸의 두려움과 생존하고자 하는 절박함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대상들의 외곽에서 피어난 일렁임이라는 양가적인 움직임과 저항하려는 의지를 접합시켜 화면 위에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유한하고 중심에서 밀려난 소멸을 기다리는 것들에게 일렁임을 적용시킨다. 화면 속 인물과 풍경 그리고 물건들은 급변이라는 상황에 놓여 위태롭지만 탈색되지 않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며 자아라고 할 수 있는 본연의 색조를 붙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색상의 변주는 변화로 초래도리 수 있는 몰개성과 분별력 상실을 암시하며 상기시킨다. 그리고 외곽선들 간에 마찰과 일그러짐을 생성해내는 붓질로써 긴장감과 저항적 의지를 가시화하며 변동이라는 대상과 충돌시켜 저항의 가능성을 도출하려 한다.

 


내가 주안을 두는 저항은 급변에 대한 반응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이지만 변화가 적은 오래된 동네에서의 성장 과정은 이러한 더딘 습성을 형성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향을 형성시킨다. 수용이 느린 습성은 새로운 것을 크게 받아들이게 하는 예민함으로 발전하여 동떨어진 위치에서 대상화된 급변을 진단할 수 있는 눈과 그것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갖게 한다. 이러한 심화는 내가 작업을 진행해 내가는 중요한 부분이 되며, 현 시대에서 간과하고 지나칠 수 있는 변혁 과정에 제동을 걸어 인지시킨다. 저항성이 다분한 붓질은 겉치장만 하는 구조적 변화를 저지 혹은 전복시켜 분별력 재획득의 가능성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금 변화의 이면과 자아의 중요성을 관객에서 상기시키는 것에 작업적 목적을 둔다.



 () 김정인_직면 상황_oil on canvas_130.3x130.3cm_2019 () 김정인_유한한 것들 것 움직임_oil on canvas_130.3x130.3cm_2019



김정훈

 


우리는 삶의 많은 것을 해낼 때 또는 해내고자 할 때 보이지 않는 하나의 기준점을 정한다. 그 기준은 다양한 모습이겠지만 궁극적 목표는 같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 말이다. 돈이며 건강이며 혹은 관계 등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결핍되어 있고 이것이 나아져 상승의 기회로 이어지길 원한다. 이것을 우리는 성공의 신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신화는 이러한 개인의 염원을 부정하는 신화가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욕망만을 취하게 만들고 보편을 벗어난 것들을 불편한 망상이라고 치부하는 하나라는 가치를 말한다. 주변에도 이것은 존재했다. 자신의 하나는 이미 남을 부정하는 도구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그것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 무감각해 보였다. 자신의 하나는 견고한 탑을 쌓듯 흔들림이 없어야만 했다. 나 역시 하나만을 믿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의도이든 내가 정의내리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절대의 가치는 어쩌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일까? 우리가 바라는 신화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또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모든 의심은 나의 견고함을 흔들었다. 이것은 신화라는 전체의 부정이 아닌 하나라는 가치의 의심이며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상승이 아닌 다음으로의 일보 전진에 대한 이야기이며, 불편한 망상을 자처하고 보편이 아닌 불편을 갖추기 위함이며 흐름이 아닌 순환의 태도를 얻기 위함이다.




김정훈_그렇기에_video installation_2019



신윤지

 

이번에 풀어가는 본인의 작업은 버려진 공간을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며, 두고 나온 것들이라 여겨지는 본인의 흔적을 다루고 있다. 존재함과 부재함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하며 부재중에 천착하고 있는, 그래서 어디에서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재단하며 발생하는 스스로에 대한 멸시, 언젠가 부재중을 지날 수 있다는 기대, 희망 등을 남겨진 것들이 존재하는 공간을 이것들과 동일시를 통해 말하고자 했다.


 



신윤지_gavial_pigment print_50.8x76.2cm_2019



조현수

 

과거 전통 회화에서 사군자의 대나무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 고결함, 강인한 기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화목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수묵 중심의 전통 한국화의 틀에 국한되지 않고 재료와 기법의 확장을 시도하여 과거 군자의 상징성을 가지고 그려졌던 대나무를 재해석하고자 한다.

 

현재의 작업은 얇은 동 박을 대나무 이미지에 콜라주를 하고, 콜라주 된 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색이 바래지며 표면의 변화가 생겨난다. 작품은 매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기 중의 습기에 의해 자연스럽게 부식이 되는 변화를 지속한다. 부식이라는 재료의 물성을 통해 생명력을 형상화하여 살아 움직이고 유동적인 대나무 숲의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조현수_after-image #1-1_copper foil on korean paper_250x190cm_2019



한솔

 

사람들은 왜 공부를 할까?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서지. 왜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할까?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지. 왜 돈을 많이 벌려고 할까? 행복하기 위해서지. 그렇다면 중간 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그냥 행복하기만 하면 안되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던 너무나 어릴적이 있었다. 행복은 멀리있는게 아니라고 하지만 한해 한해가 갈수록 안개속으로 숨어버리는 것 같다. 돌아보면 순식간에 사라진 시간 뒤로 예술을 하겠다는 나는, 어느새 지쳐버린 불안을 안고 몇개의 자소서를 뜯어고치고 있었다. 뻥튀기와 포장, 그리고 클리셰가 가득한 글쓰기. 그리고 그 수많은 글 중에서 뽑혀 구직의 승리를 거머쥐는 단 몇개의 글들. 모두가 소리높여 나는 근면성실하고 끈기와 리더쉽이 있으며 경험을 중하게 여긴다 한다. 시지프스 같이 우습다. 계속 자기자신을 재정의하며 어떤 안정적인 체계에 속하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숨이 차오르게 계속 반복한다.


 


한솔_La commedia_video 17’56’’_192x108cm_2019



황원해

 

서울은 항상 공사중이다. 어느 순간부터 서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은 아파트가 되었다. 아파트의 급격한 수요는 개성없고 획일화된 외관과 함께 서울을 단조로운 풍경으로 만들었다. 외형상의 급격한 변화를 이룬 서울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의 공간들이 무질서하게 공존한다. 서울의 중심지역인 종로구의 북촌과 서촌을 지나다니다 보면 최근에 지어진 현대적인 건축물들과 한옥들이 한데 섞인 낯선 풍경이 눈에 띈다. 곳곳에서 한옥들은 부서졌거나 부서지고 있으며, 크고 작은 건축물과 다세대 가옥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 기능을 다 하는 건축물도 그 자체로 특수성을 인정받고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금세 무너지고 빠른 시간내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지어진다. 새로 지어지기 전 기존에 존재했던 건물의 사람들이 살다간 흔적들과 기억들도 겉으로 보았을 때 깨끗이 지워진다. 그러나 공간에 관한 흔적의 기억은 흔적이라는 비시각적인 형태로 기억속에 존재한다. 계속된 공간의 변화로 인해 공간에 관한 기억은 온전한 형태가 아닌 파편화되고 단편적인 기억으로 남게 된다. 단편적인 기억들을 시각화 시켰을 때 나오는 건축물의 부분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들이 부적절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진 도시의 독특한 시각적 풍경에서 기인한다.

 

공간에 관한 파편화된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진 직접적인 소재인 건축물의 부분적인 이미지들을 수집한다. 현대성으로 상징되는 세련된 대리석과 같은 건물의 파사드와 이와는 대조되는 곡선적인 형태의 과거를 상징하는 한옥의 부분, 그리고 벽돌이나 시멘트 벽과 같은 현재 도시에서 존재하는 건물의 외관 또는 실내의 부분을 선택한다. 이 부분들은 단편화되고 파편화된 기억과 같이 화면에서 해체되고 증축하며 다시 결합된다. 견고한 형태가 아닌 부유하며 움직이는 듯한 유기적인 이미지로 화면안에서 움직인다. 이동중인 시공간의 모습을 카메라로 캡처하듯 화면이나 공간에 담는다. 본래의 부분들이 가진 역할과는 전혀 다른 조형적 이미지와 공간을 만든다.

 

화면 또는 공간 안에서 부유하는 이미지들은 완전한 형태가 없다. 부분이 완전히 결합되는 것의 과정에 관한 관심인지 완결된 부분을 해체하는 것에 관한 관심인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언어로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을 화면 안에서 표현하는 것에 관한 관심이다. 그리고 화면 안에서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유기적인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건물이라는 3D의 입면체가 평면에서 표현되는 순간에 생기는 이질감을 유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시간과 평면을 유기적 연결고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화면 안에서 중간자적인 이미지를 표현한다. 빠른 속도감으로 이루어진 붓질과 스프레이 표현 그리고 조형물들은 화면 또는 공간 속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건물의 조각들이 결합된 전체 화면 속의 공기를 설명하는데 일조한다. 어느 순간부터 건물의 부분을 쪼개어 놓고 보면 나머지 부분을 상상하게 되었다. 나는 공간이라는 커다랗고 혼란스러운 부분을 쪼개어 나가고 있다. 나는 지금 공간의 어느 부분에서 어떤 완전한 공간을 상상하고 있는 것일까.





황원해_Facade in facade_acrylic on canvas_130x489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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