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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혜선 개인전 <971. 855.....500> 숫자는 크고 작음을 알려 준다. 1보다 2가 크고, 2보다 3이 크고... 숫자로 표현되는 목숨도 크고 작음을 알려준다 말할 수 있을까? 좌혜선의 이번 작업은 소설가 김훈의 칼럼 <아, 목숨이 낙엽처럼>에서 시작되었다. 김훈은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의 사망 통계를 전하는 뉴스를 보고 참을 수 없어 급히 글을 적어 보냈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계산하여 대형/소형 참사로 구분하는 행태, 최소한의 안전망 미흡으로 낙엽처럼 우수수우수수 떨어지는 목숨을 내버려두는 처사에 대한 분노가 담겼다. 좌혜선은 이 글을 읽고 목숨에 대해 생각한다. 어제의 동료가 떨어진 자리에서 오늘도 밥벌이를 해야하는 가혹한 생. 그 가혹함을 이기려 허우적대는 몸부림을 신작 <monster dancing>에 담았다. 밥벌이와 끼니는 좌혜선의 작업을 계속 따라 다닌다. 끼니를 먹어야 움직일 수 있고, 움직여 일해야 끼니를 먹을 수 있는 생의 굴레, 끼니없이 자립할 수 없는 인체의 유약함을 이야기한다. 이전 작업이 보통 사람들의 생에 담긴 끼니의 풍경을 담담하게 담았다면, 이번 전시의 신작은 생을 떠나 죽음으로, 숫자가 되어버린, 또는 되어버릴지 모를 사람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더이상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목숨이지만, 좌혜선은 그 슬픈 목숨의 끼니까지도 되뇌이고 있다. <971. 855.....500> 2018년 산재 사망자 수 971명 2019년 산재 사망자 수 855명 2022년 목표 산재 사망자수 500명 ..... 목표 달성 500명을 기원해야하는 것일까. ○ 전시기간 : 2020.2.7(금) - 3.28(토) 11am – 6pm / 일요일 휴관 ○ 전시장소 : 오픈스페이스 배 <작가노트> 화면에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할 때 나는,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칠 것 같은 보통의 사람 입니다. 그는 벌거벗고 냉장고 앞에 서 있기도 하고, 어두운 길가를 홀로 걷기도 합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사람의 생을 명확히 그려보려 애썼습니다. 어떠한 은폐나 가식 없이, 진실의 어떤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monster dancing 작업은 소설가 김훈의 칼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글의 제목은 <아, 목숨이 낙엽처럼>입니다. 칼럼을 통해 김훈 소설가는 고공 건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건물 외벽 공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비계(쇠기둥)가 부실해서, 혹은 비용을 이유로 비계 사이의 발판을 설치하지 않아 추락해 죽은 사람이 한 해 동안 300여명에 이른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어제 동료를 잃은 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동료가 떨어져 죽은 일터로 오늘 밥벌이를 나가야 하는 그의 생을 생각했습니다. 이토록 진창인 세상에도 저항할 수 없는 끼니의 숙명에 대해,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슬프도록 유약한 인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몸이 두꺼운 벽 없이도 추위를 이길 수 있었다면, 혹은 입으로 음식을 넣지 않아도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있었다면, 그 300명은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인체의 한계가 이토록 명확해서, 생을 향한 몸부림이 그렇게 간절할 수 밖에 없는가 하고 곱씹어 봅니다. 밥벌이를 향한 인간의 몸부림은 자꾸만 어긋난 방향으로 고꾸라집니다. 유희 없는 그로테스크한 동작만이 세상을 가득 메웁니다. monster dancing 작업은 그러한 생의 풍경을 표현하고자한 이미지입니다. 정부는 2019년 산재 사망자 수를 855명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는 전년도의 971명보다 116명 줄어든 숫자 입니다. 정부는 또한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 수를 1년에 500명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도 했습니다. (전시 제목971, 855, 500의 의미) 그래서 나는 다시, 앞으로 밥벌이의 장소에서 죽어야 할 500명에 대해 생각합니다. 971보다 116이 작아서 다행인 855에 대해, 최소한의 죽음으로 취급될 500이라는 숫자에 대해 생각합니다. 안심을 위해 목표가 된 죽음의 수치가 기막혀서, 나는 500개의 생에 대해, 그 한사람에 대해 끝없이 되뇌어 봅니다. |